나는 이렇게 살았다.

5/10/26
나는 이렇게 살았다.
학권 마치고 인관할 때 가장 힘든 평가가 어딘지 물어서. 보병을 지원했지. 보병 키워가 다 찼다고 하길래 그 다음으로 힘든 데가 어딘지. 물어서 배정받은 곳이 기갑이었다. 나는 그렇게 힘든 것을 마다하지 않고 내 몸을 던지는 그런 DNA가 있었던 것 같아.

내가 다니던 대기업에서
가장 핵심 보직인 청탁을 처리해야 되는 담당 과장으로 배정받았다. 거기서 나름대로 즐기면서 생활할 수 있었지만 그만두었다. 남들은 나를 보고 이상한 놈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좋은 것을 좋은 것으로만 보지 않는 그런 삶을 살았다.

대기업 처음 입사해서 어떻게 하다 보니 근무 환경이 좋은 연구소에 배치를 받았다. 일정 시간이 지나자 나는 내 전공을 살리고 싶었고. 그래서 울산공장 지방으로 발령을 요청했다. 사람들은 나를 두고 이상하다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울산으로 가는 것이 전혀 낯설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살았다

공장에 가서도 사람들은 나를 엉뚱한 사람으로 바라보는 것 같았다. 모두가 서울 근무를 희망하는데 지방 근무를 자원하다니 그렇게 해서 내가 배치된 것은 울산 생산 현장의 생산을 총괄하는 직책으로 배치받았다.
공장 생활을 하면서 대단히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만들어내고 그것을 현장에 접목시켰다.
내가 근무하던 그 당시에 사람들은 나를 주목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런 주목을 부담스러워하지도 않았지만 즐기지도 않았다. 나는 나의 일만을 찾아서 하나씩 했던 것이

지금 생각해 보면 회사를 그만두고 새로 시작한 사업이라는 것이 너무너무 고사할 것 없는 것이다. 그것이었다.
그 당시 자본이 없었던 탓이 크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찾아서
열심히 일을 했다. 자본으로 돈을 벌 꿈은 꾸지도 못했고 온전히 내 손으로 노동하면서 생활했다. 그때가 나의 30대 후반 40대 초반 그 10년 동안 그 아까 어떤 10년 동안 너무 힘들게 생활했다. 후회하진 않는다. 하지만 그때
내가 좀 더 지혜로웠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그리고 미국으로 갔다. 닭공장 생활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는 글들이 있었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어렵고 식고를 따지지 않았다. 내가 해야 될 일이라고 생각하면
나를 던져서 했고 해냈다. 낙공장에서도 처음엔 생산직으로 일을 했지만 곧 품질 관리 요원으로 어플라이하고 또 그렇게 생활했다.

이민 정착 과정에서도 없는 자본으로 할 수 있는 찾을 수 있는 최선을 다 했다. 세탁소도 리콜스토어도 이런저런 비즈니스를 다녀봤지만. 결국 나는 나 혼자 비즈니스를 하는 것으로 개척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그 방향으로 나를 드라이빙 시켰다. 대단한 성공은 아니지만 생활을 할 수 있게 했고
안정된 이민 생활 초기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아내에게 요양원 운영에 대한 팁을 공유하면서 추진했고 156년을 운영했다. 이 역시 큰 성공은 아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제 정리하고 은퇴 생활로 들어간다.

누구 권유를 받았다기보다는 내 의지로 선택해서 살았던 시간
자 이제부터 펼쳐진 시간은 어떻게 살게 될 것인가? 지금도 누가 옆에서 이렇게 저렇게 살으라고 조언해 주지 않는다. 온전히 나의 선택으로 살아나갈 앞으로의 시간
삶을 마무리하는 이 시기를 잘 보내보고 싶다.

그런 나를 축복해주고 서원해줬던 많은 분들이 있었던 그런 분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다른 길을 택한 나의 행동이 있었던 지나간 것을 후회하는 것은 아무 소용 없는 일이다. 그 대목에서는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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