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2 독일여행

9/22
0319.. 희상집.. 첵인.. 민트
0359.. JFK까지 전철로 가야겠다. 
0239.. 1시간 남았다. 영국상공.. 
베를린은 어린 내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어릴때는 몰랐다. 크면서부터 어머니가 달리 보였어. 어머니는 용감헀어. 어머니는 씩씩했어. 

어머니가 꿈을 갇고 생활했던 베를린을 사랑한다. 이제 어머니와 같이했던분들 만나니 정말 좋다. 젊었던 시절 좋았던 시절. 당신들의 결정과 헌신에 경의를 바친다. 자랑스럽다. 고맙다. 여러분 모두 건강하시고 평화롭기를 바란다. 나도 여한없이 베를린을 생각하면서 잘 살겠다. 

그당시에 어머니가 있었으면 좋았겠지. 나와 동생들이 조금 더 안정적인 성장을 했겠지. 그러나 어머니를 원망하지 않았어. 오히려 가정을 위해 몸을 던진 씩씩한 여자로 생각했어.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어머니의 희생, 노력이 물거품이 되었다는게 화가 나. 그러나 어쩌겠어. 그런것이 인생인것을. 어머니 하던말 생각나. 여러번 쏘 다스 이스트 리벤. 

독일에 남으신분들도 쉽지는 않았을거야. 독일로 이주한 자녀들도 쉽지 않았을거야. 나도 40중반에 아이들 데리고 이민가서 잘 알아. 삶은 쉽지 않아. 

그래도 나는 다행이야. 어머니 끝까지 살펴드렸어. 가시는것도 봤고. 나이 들면서 많이 알게 됐고 이제 마음의 여유도 있어. 세상이 아름답게 보여. 모든게 아름다워. 

어르신들 건강하게 평화롭게 남은 인생 잘 정리하시는것 보고싶어. 나도.. 서두르지 않고 많이 웃으면서 잘 살거야. 

정하은 ㅁㄱ사... 3년 연장관련... 땅 사서 건축... 정동향 한인회장.. 부회장.. 1200권.. 

9/28.. 베니스에 내리면 렌트카 픽업하고... 제일 먼저 해야 될 것. 가벼운 샌들 하나하고 손톱깎기를 살 수 있고, 식료품도 좀 구할 수 있는 마켓에 가고 싶어. 미국에 월막 같은 곳 말이지. 공항에서 가장 가까운 곳으로 길 안내 부탁해.

어머니가 배를 인해서 잘 지내고 돌아온 것을 의심한 적은 없어. 선
대한 로망이 있었잖아. 돈도. 벌 수 있었고 선진국의 풍물을 접할 수 있었을 것이며 친구들도 사규였을 것으로 생각해

그래서 나는 이렇게 생각했던 거야. 어머니가 힘들 때마다 사실 귀국 지금도 한국 상황은 좋지 않았어. 고등학생이었던 내 생각에 I am. 귀국하지 마시고 우리를 데리고 가시지. 그게 좋지 않았을까? 좋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오셨고 어머니가 오셨으니까 좋았고. 한국에서의 청년기에 장년기 보내게 되었어

막연하게 이런 생각은 하고 있었지. 그때 베를린으로 나갈 수 있었던 내 또래 아이들은 어떻게 지냈을까 라는 생각 말이야. 그냥
막연하게 잘 성장했을 것으로만 생각하고 있었어. 그런데 이번에 그들이 얼마나 힘들게 독일 사회에 적응했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지.

40대 중반에 미국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이민을 간 내 경험으로 이민사에 아이들이 적응하는 것은 쉽지 않았어. 그들이 원해서 미국으로 온 것은 아니었거든. 그들도 외국에 나간다라는 기대만으로 미국에 왔지만 이민 생활을 시작했지만 그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 줄은 나중에 알게 된 거야. 그래도 미국은 나았어. 다민족 사회였었기 때문에 그나마 적응해 적응하게 나은 게 있었다고 생각해

하지만 독일의 경우는 많이 달랐을 것 같아.
문화도 다르고 언어도 다르고 그리고 무엇보다 인종 다양성 측면에서도 미국과는 다르지.
한국에서 건너왔던 내 또래 아이들이 얼마나 문화적 충격과 학교생활 사회생활을 해야 했을지 상상에 드는 바가 있어.

이제 나는 나이가 들었고 은퇴도 했어. 지난 시간을 여러 형태의 각도로 돌아보게 돼.
네. 파도 간호사 어머니의 경우는 독일 생활 6년이 화양연화의 시절이었을 것을 두 번의 베를린 방문으로 느낄 수 있었어. 독일로 간 것도 그녀의 결정이었고 돌아온 것도 어머니의 결정이야. 그리고는 한국에서의 생활은 내가 알지 어떻게 생활했는지 알지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해. 그리고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해. 

초등학교 때 중학교 때 고등학교 때 어머니와 살갑게 지냈으면 얼마나 더 좋았을까? 그러나 세상 일이 다 그렇듯이 바라는 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아니잖아 이제는 지나간 오래된 이야기 앞으로도 생각은 나겠지만 아름다워서 놀라고 아름다운 삶이었노라고. 아름다운 시간이었노라고. 이야기 해 두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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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를 하고 나이가 들면서 지난 시간을 생각해.혹시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에요? 있었으면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해 보는 중이야. 그중에 한 가지 내 어렸을 때 궁금해 했고.보고 싶었던 어머니가 어떻게 지냈는지에 대한 궁금한 게 있었어. 그것을 찾아보는 것이지

베를린에 대한 베를린에서 어머니가 잘 지냈을 것을 확인해 본 것은 좋았어. 어머니는 분명히 잘 지내신 거야? 그때.

내가 생각지 못했던 것이 있어. 내가 어머니가 나를 불러주어서 독일에 갔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하는 그런 거야? 이번에 와서 그때 건너온 친구들이 이민을 충격을 받았을 것이라는 것을 나는 생각하지 못했어.
아이들을 데리고 아이들을 독일로 불러오신 분들이나 아이들을 찾아서 한국으로 돌아오신 분이나 이것이 모두 인생인 것을

이제 나는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잘 살 거야. 옛날 일에 행열해도 아쉬워하지 않고 앞으로 닥7일 너무 걱정하지 않으면서 잘 살 살 거야

이번 여행을 통해서 알게 된 사람들을 그들과 연락은 계속 하고 싶어
어떤 아 저 아름다운 인연으로 말이다. 파도 카노사를 부모로 둔 자녀들 네 어머니 홍 회사와 같은 공간에서 생활을 했던 분들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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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잊고 있었던 여러 가지 것들을 다시 생각할 게 만드는 기회였다. 50년 전 이야기 젊은 20대 30대 한국 여자들은 왜 독일로 갔는가? 독일에서 어떻게 생활했는가? 독
근무를 마치고 3년 계약 후 어떻게 근무기간을 연장할 수 있었으며 바둑 간호사 전체 인원 중 40%가 거기에 대한 남고 욕스트로가 돌아왔다. 독일에 담았던 간호사들은 그 뒤에 어떻게 적응했는가? 한국어로 나원 여자들은 어떤 생활을 삶을 살았는가? 독일의 남은 여성들이 저기 자녀와 가족을 초대했을 때 자녀들은 어떻게 독일 사회에 적응을 했는가? 한국
돌아온 사람들의 아이들은 어머니 부재로 인한 상처를 어떻게 기억하고 영양 받았는가?
여러 가지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들을 생각하게 되는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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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전과 은퇴 후는 이래서 다른 것이다. 살아오면서 즐거웠던 일 좋았던 일 그리고 불편했던 일 고통스러웠던 일조차 이제 아름답게 반추해 보는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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