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예찬 화양연화
어머니가 살던곳을 찾아서. 3년전에는 어머니가 남긴 사진을 들고 베를린을 찾았다. 그러면서 만난 인연. 허여사님 내외분과 간호협회 회장님을 통해 겨우겨우 어머니의 흔적을 찾을수 있었다. 그때 기록을 영상으로 만들어 유투브에 올렸더니 어머니와 같이 근무하셨다는 몇분이 연락을 주셨다.
2년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올 봄에는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 두분을 여의는 의미로 다시 한번 베를린을 찾았다. 이번에는 내 반려자와 함께 했다.
어렸을적 어머니가 왜 가셧는지는 짐작으로 알았다. 아버지와의 관계, 재정적인 결핍등 이런 저런 이유를 짐작했을뿐이다. 문제는 어머니 부재로 인한 부족함이 있었다. 그러나 괜찮았다. 나는 그렇게 살았다. (동생들은 어땟는지 물어보지 않았다)
필요하셧으니까 가셨겟지. 그러면 이제 우리를 데리고 가시면 어땟을까. 그러나 다시 오셨다. 오셔서 좋았지만 아쉬움이랄까 이런 감정은 분명히 있었다.
이번 여행에서 그때 독일로 건너간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살짝 들어보게 되었다. 결코 행복한 적응은 아니었다는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에 대한 이해는 내 경우 잘 안다. 나 역시 40대 중반 나이에 미국으로 이민해서 고3과 중1이었던 아이들이 20여년동안 어떤 과정을 거치면서 적응햇는지 알기 때문이다.
차라리 미국은 나았을수 있다. 독일이라는 민족국가, 아직 패전의 트라우마가 있었을 나라에 이민자로 살아간다는것이 어떤것이었을까.
지나간것을 추억하는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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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댓글 감사^^